면도를 하고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옷을 다 챙겨입었는데도 데니스는 오지 않는다. 유리와 같은 일상, 숨을 곳이 없는 일상, 곧 깨질것을 인지하는 일상, 그럼에도 나는 좀처럼 이곳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것들이 무섭다. 데니스는 부드러운 것들에 중독되었다. 나른하고, 그와 동시에 자기방어를 열심히 하고, 나는 그런것들이 훤히 보이지만 비판하거나 독촉하지 못한다. 아마 나도 비슷한 것들에 싸여있고 싶기에. 살이 표피가 점점 녹아가는 느낌이다.
여행중에 일상을 만드는건 그래서 무섭다. 외부에서 보는, 좀 지루한 듯 나태한, 풍경들이 나에게로 느슨하게 스쳐가는,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그런, 여행은 끝이 난 것 같다.
나는 이제 선택하지 못하고, 그 풍경과 그 사회와 그 현실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질 것이다. 새끼발가락으로 온 몸을 지탱할 정도의 아슬아슬함.
누구를 엄청 때리는 꿈을 꿨다
사과 문자(겉으로는)라도 보내야 할것같네
자는동안 많은것이 변했을 것 같은 아침이다.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심보선
오래된 습관을 반복하듯 나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그대는 묻는다, 왜 어둠을 그리도 오래 바라보냐고, 나는 답한다, 그것이 어둠인 줄 몰랐다고, 그대는 다시 묻는다, 이제 어둠인 줄 알았는데 왜 계속 바라보냐고, 나는 다시 답한다,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그대는 내 어깨 너머의 어둠을 응시하며 말한다, 아니요, 당신은 멀쩡히 깨어 있어요, 너무 오랜 고독이 당신의 얼굴 위에 꿈꾸는 표정을 조각해 놓았을 뿐
이 밤에 열에 하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열에 하나는 무척 외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열에 하나는 흐느껴 울기도 한다, 이 밤에 그대와 내가 이별할 확률(=0.1*0.1*0.1)을 떠올리면 내 얼굴은 저 높이 까마득한 어둠 속 백동전으로 박힌 달 표면처럼 창백해진다, 나는 다만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시간의 완곡한 안쪽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고 싶은데, 지금 나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고 번민으로 오로지 번민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병든 개와 모든 풋내기가 그러하듯 나는 운명앞에서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대를 오랫동안 품에 안았으나 내 심장은 환희를 거절하고 우울한 예감만을 가슴복판에 맹렬히 망치질 하였다, 우연이란 운명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에 그대와 나는 또 다른 운명으로 만났다, 그러나 운명과 우연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서로의 목전에서 모래알 처럼 산지사방 흩어지고 있는데
그대에게서 밤안개의 비린 향이 난다, 그대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 어둠 속 내륙의 습지를 돌아와 내 눈동자에 이르나 보다,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나는 수치심에 젖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어느 것이 먼훗날 불멸의 침대 위에 놓이겠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확률이란 비극의 신분을 감춘 숫자들로 이루어진 어두운 계산법이 아닌가
눈을 떴을 때 그대는 떠났는가, 떠나고 없는 그대여, 나는 다시 오랜 습관을 반복하듯 그대의 부재로 한층 깊어진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다, 순서대로라면, 흐느껴 울 차례이리라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 십년전에 세상에 없던 리버피닉스를 추모하는 방송을 들었다. 십년전의 라디오를 듣는건 이상한 일이다. 그때 했던 시사회 안내 방송같은 것들이 특히 그렇다. 열일곱살에 봤던 러브액츄얼리와 싱그러웠던 겨울의 냄새, 던킨도넛츠의 설탕냄새에 곤혹스러워했던 촌스럽고 작고 애벌레 같았을 나, 그때 어른이었던, 영화를 사랑했던,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목소리.
우울해하며 방송을 시작하다 마지막엔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멋적다고, 이게 사람인가보다고 마무리 짓던,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멋적다. 죽은 사람을 미워할수는 없는것 같다. 조금 성의없게 사랑하기는 쉽고.
오늘은 많이 걸었고, 돈을 좀 썼지만 기분이 좋다. 프래니와 주이를 마음에 드는 크기와 무게의 책으로 구입했고, 쌀과 엽서도 샀고, 그래서 짐이 많았지만 돌아오는 지하철이 한산해서 좋았다.
이 도시에 사람의 밀도만 좀 적어져도 숨쉬기가 한결 편하다. 공기와 시선이 나를 때리던 기분을 아주 많이 느꼈으니까, 나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거다.
파로에 얼른 가고싶다.
난 좀 바보같은 애들이랑 친해지는 것 같다.
러시아에서 파는 중국식 샐러드(얇은 당면과 야채를 볶은것)와 한국식 샐러드(콩줄기와 콩, 파프리카등을 기름에 무친것)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마늘맛이 강하게 나고 좀 짜다. 한국에선 본적도 없는 조금만 먹어도 질리는 맛인데, 여기선 사람들이 꽤 잘 먹나보다. 관념적인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누군가의 살이 되는 오해의 음식들.
뉴욕에서는 유명하다는걸 찾아서 사먹고는 했는데, 여행 막바지엔 장염같은거에 걸려 고생했다. 습하고 차갑게 느껴지던 날씨와 화장실을 찾아 몇블록씩을 걸어다녔던 기억, 그리고도 몇잔씩 마셔댔던 카푸치노. 이런걸 그만해야겠다고 느낀건, 뉴욕에 다녀온 애들이 똑같이 유명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맛을 느끼고, 음식에 대한 비슷한 향수같은걸 느낀다는걸 알았을 때였던것 같다. 여행이란건 고유한 활동이었는데, 이제는 여행도 경험이라는 이름의 스펙이 되는걸 보면 우울해진다.
기름지고 짜고, 또 지나치게 단 음식들을 엄청나게 섭취했는데, 이제 약간 정신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충치가 생긴것 같은 기분이다. 머릿속에도.
3.6.(9)
세시간동안 세탁기가 돌아간다. 어떻게든 멈추고 싶지만, 잠금 표시를 어떻게 해제하는지 몰라 내내 그 소리를 듣고있다. 경쾌하고, 리듬감있는 세탁기의 소리, 돌아갈때 안을 동그랗게 비워두는, 공명의 소리.
좀 더 무거운 느낌의 타이프 타자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맥북의 키보드는 너무 가벼워. 그 글자 안에 머물고 싶은 시간이 있는건데, 나는 아직 적합한 키보드를 찾지 못했다. 손글씨는 가끔 너무 노골적이고, 무엇을 쓰느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신경쓰는 느낌이 썩 좋지 않다.
빨래를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걸쳐두고, 라디에이터를 빵빵하게 돌렸더니, 그 습기때문에 숨쉬는게 곤란해졌다.
산책을 하자. 산책을. 이쪽 문으로 나가서 참새언덕쪽으로 돌아 저쪽 문으로 들어와야지. 라벨의 교향곡을 들어야지. 돌아올때 저쪽에서는 양파와 마늘과 귤을 사와야지.
3월 6일인데 공기가 써늘하다. 열일곱살쯤의 겨울에는 해파리와 함께 객사에서 송천동까지 걸어갔었는데. 그 날 찍었던 텅스텐 조명의 몇장의 사진들이 그날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준다. 허벅지가 시원하게 얼었고, 우리에겐 걸음을 멈출 지혜같은것은 없었다. 그때의 짱짱한 용기, 느슨한 감정선, 깨끗한 공기와 예쁜척 찍었던 사진같은것들. 그게 거의 십년전 기억이라니 징그러워진다.
산책을 하며 나와 1km 반경 안에 살고 있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저 스멀스멀 피했다고 하는게 맞다.
너무 징그러운 사람들.
맥도날드에 들러 치킨 롤을 든든히 먹고 커피도 한잔 테이크아웃 했는데, 역시나 잔뜩 쫄았다. 사람들은 짧아진 머리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나는 그런식의 대화가 괜찮았다. 적어도 앞에서 인상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얼마나 연약하며, 그 연약함에 얼마나 목소리를 주고 싶어하는지. 그러니까 침묵과 도망과 포기는 목소리 없는 목소리가 될 수도 있고, 나는 이런 방법이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이 텁텁하고 맛이 가있는데도 계속 담배가 피고 싶어서, 한대를 신중하게 피고 나면, 목 상태가 좀 더 안좋아져있는게 느껴진다. 아플때 느껴지는 신체의 염분, 나는 짠 인간이었어. 또 요즘은 짠 음식을 잘, 많이 먹는다. 학생 식당의 음식이 싱겁게 느껴질때 깜짝 놀랬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요즈음 내가 느끼는건, 나에겐 구멍이 많다. 그 구멍은 헛점같은 것이 아니라 구체성의 구멍이다. 나는 내가 정말 추상적인 인간이라고 느껴진다. 느낌에 너무 많은것을 부여한다. 그것의 한계가 신체성의 한계와도 정확하게 같은데도, 나는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다만 인지할 수는 있다. 그 구멍들을 채워넣을 생각을 하지 않기때문에, 나는 그 속으로 숨을 수 있다. 아주 편리하고 유용하다. 그렇지만 그 구멍은 나만을 위한 것일까? 가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나에게 있는 구멍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그 공간을 이용한다.
룸메이트와 방을 따로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방문의 각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어느정도의 일상과 흡연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가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같은걸 닮지 않고 싶다.
스웨덴, 싱가포르, 노르웨이, 파리, 독일, 중국, 멕시코에서 온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전형적일까. 각각의 나라의 이미지와 성격의 사람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국가관계와 꼭 닮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작은 권력같은 것들.. 그런것들이 눈에 보이니까 불편하다. 그들이 보기에 나도 전형적인 아시안 여자애일까. 이 질문을 하고,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역겹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할것 같다. 사소한 관계까지 투쟁적으로 만드는 세상의 권력… 존레논은 죽었는데 나는 누구 노래를 들어야 하나.
뭘 먹고 십분이라도 자면 정말 배가 고프다.
차가운 중국 국수는 맛있었는데 마늘냄새가 많이 나고 짠게 문제다. 로이가 바에 가자고 했는데 안갔다.
근데 다니엘도 좀 추상적인 애 같다.